내 삶이 나와 멀어질수록 위험하다
'나'가 흐려지면 사람은 반드시 병든다. 마음의 영역에선 그게 팩트다. 공황발작은 자기 소멸의 벼랑 끝에 몰린 사람이 버둥거리며 보내는 모르스 부호 같은 급전이다. "내가 희미해지고 있어요. 거의 다 지워진 것 같아요"
사람은 나를 그대로 드러내는 사람에게 끌린다. 사람이 가장 매력적인 순간은 거침없이 나를 표현할 때다. 모든 아기가 아름다운 것도 그 때문이다.
이 부분이 특히 마음에 와 닿았다.
아이들의 천진난만함이 왜 그렇게 아름답고 눈을 뗄수 없는지, 내가 힘을 내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할지 작은 메시지를 주는 부분이였다.
자기성이 소거된 채 부모의 기대나 사회적 역할, 가치 등에 전적으로 기대어 살아가던 사람은 절대적 의존 대상이던 그 부모나 배우자와 이별하거나 절대적인 내 역할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던 일이 없어지거나 그 가치가 빛을 잃을 때 공황발작을 경험할 수 있다.
자기성의 소거된 채라는 부분은 참 날카로운 표현이 아닐 수 없다. 세상을 살아가는게 어떻게 보면 조금씩 조금씩 자기성을 소거하고 있는게 아닌가? 우리가 학교에 적응하고, 직장에 적응하고, 사회에 적응하는게 자기성의 소거가 아니면 무엇인가... 그럼 현대인은 모두 공황발작적 인자를 안고 살아가고 있다는 것인가.... 이 사회의 기준에 맞추지 않고 살기가 쉽지 않으니 말이다.
네가 그럴 때는 분명 그럴 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라는 말은 '너는 항상 옳다'는 말의 본뜻이다. 그것은 확실한 '내 편 인증'이다. 이것이 심리적 생명줄을 유지하기 위해 사람에게 꼭 필요한 산소 공급이다.
나도 이런 사람이 내게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밑줄을 그었다. 내가 어떤 행동을 하든 무슨 말을 하든 날 전적으로 이해해줄 누군가가 너무나 있었으면 좋겠다 생각했다. 하지만 한편 난 누군가에 이런 사람이 되어주고 있나? 라고 반문해 보면 자신이 없다. 일단 내 아이에게 이런 부모가 되어 주고 싶다는 생각을 하며 다음 페이지로 넘겨 본다.
감정은 존재의 핵심이다. 핵심은 감정이다. 내 가치관이나 신념, 견해라는 것은 알고 보면 내 부모의 가치관이나 책에서 본 신념, 내 스승의 견해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내 감정은 오로지 '나'다. 그래서 감정이 소거된 존재는 나가 아니다. 희로애락이 차단된 삶이란 이미 나에게서 많이 멀어진 삶이다.
처음 이책을 읽을 때는 몰랐는데 2~3번 읽으면서 작가의 감정선이 조금 보인다. 작가의 불안한 감정선이 작가도 책에 썼듯 불안한 유년기를 보냈고 그것이 심리상담가로 가게된 계기였다고 했다. 아직 치유되지 않은 작가의 감정들이 곳곳에서 보인다. 쏟아내듯 쓴 글들, 아직도 생생하게 느껴지는 감정들이 책에 그대로 전해진다. 특히 이 부분에는 더욱 그런거 같다. 이 부분을 읽으며 내 감정에 충실하자 나는 어떤 것에 희로애락을 느끼는가 나를 알아보자 했는데 다시 한번 정리하면서 희로애락 또한 부모님의 영향을 벗어나긴 힘든 부분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 분들에게서 상당부분 전이 되어진 것들이 있다. 이것을 채에 거르고 걸러 오로지 나의 것을 찾아야 하는 것일까? 그러기엔 그런 감정들에게서 너무 멀리 온거 같다. 그 감정들에 더 다가가서 내 감정과 오염된 감정을 가려내야하는 걸까? 존재의 핵심이 감정이라는데 그 핵심에서 멀리 있는 나를 본다.
감정도 그렇다. 슬픔이나 무기력, 외로움 같은 감정도 날씨와 비슷하다. 감정은 병의 증상이 아니라 내 삶이나 존재의 내면을 알려주는 자연스러운 반응이다. 우울은 도저히 넘을 수 없을 것 같은 높고 단단한 벽 앞에 섰을 때 인강니 느끼는 감정 반응이다.,,,, 그러므로 우울은 질병이 아닌 삶의 보편적 바탕색이다. 병이 아니라 삶 그 자체라는 말이다. 그럼에도 우울의 질곡에 빠지면 도저히 끝날 것 같지 않아 평생 우울의 감옥 안에 갇혀 살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감정은 날씨와 같고, 날씨가 변화무쌍하듯 감정도 변화무쌍한 것이다라는 말은 퍽이나 위로가 된다. 그런데 적도지방 날씨나 극지방 날씨처럼 한가지 날씨만 쭈욱 이어지는 삶은 어쩌라는 건지... 그것도 날씨니 그런 날씨에 적응하며 살아야 하는 거겠지... 그 지역 사람들이 그런 날씨에 맞는 옷을 입고 집을 짓고 음식을 먹는 것처럼.... 아직도 내 감정에 적응이 힘든 나는 아직 내 기후에 적응하는 방법을 모르고 있나 보다. 그냥 이건 날씨와 같은 거고 질병은 아니야....
공감은 상대를 공감하는 과정에서 자기의 깊은 감정도 함께 자극되는 일이다. 상대에게 공감하다가 예기치 않게 지난 시절의 내 상처를 마주하는 기회를 만나는 과정이다. 이렇듯 상대에게 공감하는 도중에 내 존재의 한 조각이 자극받으면 상대에게 공감하는 일보다 내상처에 먼저 집중하고 주목해야 한다. 스스로 따스하게 물어줘야 한다.
작가는 공감이라는 것이 힘들고 감정이 소진되는 이유가 자신의 감정은 누르고 상대방의 감정에만 집중하려 고 노력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진정한 감정은 자신을 소비해 가면서 누군가를 힘들게 공감하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 그런 방식으로는 공감을 이룰 수 없고 버겁기만 하다고 한다. 타인을 공감하며 자신 또한 공감받아야 하는 것 그것이 공감이라고 한다. 그래서 누군가를 진정 공감하게 되면 자신안에 상처도 같이 공감받게 되어 둘이 함께 치유 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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